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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루터연구센터
[긴 글] 루터의 “교회의 일곱 가지 표지”

한국루터연구센터 엄진섭 원장 (Th.D.)

한국의 개신교회는 2년 전 종교개혁500주년을 기념했다. 루터 연구 저서 발간, 학술 발표, 종교 개혁지 탐방, 기념 예배, 기념 특강 등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특히 교회가 안팎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절박한 관심이 교회 갱신에 맞춰졌다.

자기 교회의 역사를 잘 아는 미국 루터교 목사가 개혁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한 적이 있다. 첫 번째 세대는 개혁의 불을 피운다(열기가

뜨겁다). 두 번째 세대는 불을 보살핀다(열기가 유지되는 상황). 세 번째 세대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애쓴다(불이 가물가물한 상황). 네 번째

세대는 불이 타올랐던 장소를 지킨다(다 꺼져서 잔재만 남은 상황). 다섯 번째 세대는 불이 어디서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지 기억하려고 애쓴다

(역사책에서나 기록되는 과거의 사건이 되 버린 것). 이처럼 새로이 수립된 전통은 퇴화하기 마련이어서 16세기 개혁자들은 “교회가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 루터의 교회관을 소개하려고 한다. 루터는 어떤 글에서 말했다. “일곱 살짜리 아이라도 교회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곧 교회가

목자의 음성을 듣는 거룩한 신자들이요 작은 양떼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다.’라고 고백한다.” 루터는

이 거룩함은 인간들이 성경 위에 올라서서 고안해낸 다양한 예복이나 의식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신앙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루터는 다른 글에서 교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공의회와 교회에 대하여>(1539년)의 결론 부분에서 “교회의 일곱 가지 표지”를

다루었다. 교회의 표지(marks)라는 말은 무엇을 보고 교회가 있는지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루터는 교회의 표지가 일곱 개라고 했다.

일곱 개의 표지가 보이면 거기에 교회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딴 데는 없고 교회에만 있는 것은 무엇일까?

I.

먼저, 교회의 첫 번째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는 말씀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교회가 있다. 루터는

“교회가 말씀의 피조물”이라고 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져 간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약속이 있다. 이것이 세상의 말과 다른 점이다. 이 세상의 언어는 조건적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누릴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먹고 이렇게 저렇게 운동하면 다이어트에 성공할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얘기들 이다. 책방에 꽂혀 있는 수많은 자기 계발 안내서들도 당신이 이렇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달콤하게

얘기한다. 그런데 조건적인 말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지 못한다.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어법과 다르다. 무조건적이다. 우리의 행위와 거룩함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분 자신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써 우리의 운명을 책임지신다. 하나님 말씀에는 생명과 부활에 대한 약속이 들어있다. 성경을 보라. 성경은 특이한

책이다. 여러분이 읽은 다른 책들을 한 번 생각해 보라. 거기에 어떤 약속이 들어 있나?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신약만 아니라 구약도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 아니 그 이전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구세주의 탄생을 말씀하셨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 3:15).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다. 약속이

들어있는 말씀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부른다. 무조건적인 말씀, 약속이 들어 있는 말씀은 세상의 어법이 아니다. 세상이 익히 듣지 못한

종류의 말이다.

그러므로 말씀은 선포되어야 한다.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 마음에 믿음이 생긴다. 루터는 로마서 말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10:17)를

좋아했다. 말씀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곳이 비텐베르그라는 도시이다. 그 곳의 시(市)교회에서 루터가 설교를

많이 했다. 교회 제단 장식대에 루터파 화가 아버지와 아들이 그린 그림들이 여럿 걸려 있다. 한 그림을 보면(위 그림 참조) 루터가 오른 쪽

강대상에 서 있고 왼쪽에는 사람들이 설교를 듣는 모습이 있다. 그림 중간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루터는 한 손은

성경책에 놓고, 다른 손으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 그림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말씀은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선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루터는 말씀의 선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던지 교회를 “입의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말씀이 선포될 때 그리스도 자신이 말씀한다. 그리스도는 이 천년 전에 이 땅을 다시시면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 분이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오셔서 천국의 진리를 선포하신다. 이것은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루터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곳 옆에 마귀가 자신의 회당을 짓는다고 했다. 교회가 항상 훼방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는 마귀와 어두운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루터가 작사 작곡한

찬송이다. 그런데 이 찬송을 부를 때 1절만 부르면 안 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요즘 말로 문제제기만 하고 끝나면 안 된다. 문제해결을 말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절까지 불러야한다.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외친다.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그런데 원어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보라! 마귀가 확실히 파멸될 것이니 작은 말씀

하나가 그를 거꾸러뜨리리라.” 마귀의 공격이 거세고 위협적이다. 그러나 마귀가 아무리 으르렁 거리고 노하여도 교회는 하나님 말씀으로

견고히 서 있다. 기억하시라.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받으셨을 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물리치셨다.

이상 교회의 첫 번째 표지에 대해 설명했다. 말씀이 교회의 기초이다. 나머지 여섯 가지 표지는 모두 다 말씀과 유기적으로 관련 있다.

II.

교회의 두 번째 표지는 “세례”이다. 세례는 거룩한 예전이다. 그래서 “성례전”이라고 부른다. 성례전에는 세례와 성찬이 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성례전이 약한다. 찬송가에 세례와 성찬에 대한 찬송이 적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례에 대한 찬송이 통일찬송가에는 전무

했었는데 새찬송가에는 세 곡 들어있다. 성찬은 통일찬송가에서는 다섯 곡 새찬송가에는 일곱 곡 들어있는데 활용이 잘 안 되고 있고

성찬식때 주로 감성적인 백뮤직이 깔린다. 외국에서는 성찬식이 진행되는 동안 회중이 성찬을 주제로 한 찬송을 부른다. 민경배 교수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회가 성례전에 약한 이유가 복음이 미국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공회 등을 빼고는 거의 다 미국을 통해

들어왔다. 당시 선교사들이 성례전을 중요시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터교도 미국을 통해 들어왔다. 루터교는

전통에 따라 성례전을 중요시해서 교회 내부 구조에서부터 세례대와 제단을 설교단과 함께 앞에 나란히 놓는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 전반이

워낙 비-성례전적이라 루터교도 영향을 받아 성례전 신학이 약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성례전 실천도 성숙하지 못하다.

세례는 우리를 중생하게 하는 물이다. 인간은 모두 원죄 가운데 태어난다. 그러므로 세례의 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눈으로 볼 때 세례는

특별한 것 같지 않다. 물 한 줌을 사용할 뿐이다. 그러나 세례는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한다. 세례는 하나님이

자녀로 선택하시는 순간이다. 교회는 다니지만 나이 들어서도 세례 받지 않는 경우를 보았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에서 이다.

마흔이 넘도록 세례를 아직 안 받은 여성이 보았다. 예배 끝나면 바로 집에 온다. 교회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왜 세례를 받지 않느냐고

물으면 자기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믿는 사람이 저래서는 안 되는 데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나는 저런 모습으로 세례 받고 싶지 않다, 더 나아진 다음에 받아야지라고 생각한다. 이 여성은 기독교 신앙을 잘 못 이해한 것이다. 만일

세례에 커트라인이 있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도 충분히 준비할 수 없을 것이다. 세례는 나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 “받는다”고 수동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다음으로, 세례는 씻을 洗자 예도 禮자가 합쳐진 말이다. 우리의 죄를 씻는 예식이다. 그런데 씻는 것보다 더 강력한 의미가 있다. 죽고

부활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세례에서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장사되었고 새 사람이 일어났다고 선언한다(롬 6).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일어나는 일은 마지막 날에 온전히 있을 것이지만, 이것을 세례에서 미리 앞당겨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사람은 자신을 새 사람으로 알고 살아야 한다. 세례는 크리스천 정체성의 시작이다. 세례를 과거의 사건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매일 매일 세례가 계속된다. 우리는 날마다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사는 것이다. 세례의 의미는 우리가 무덤에 갈 때 완성될

것이다. 61년 전(1958년) 미국 미조리 의회(Lutheran Church-Missouri Synod)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오신 도로우(Dorow)목사님은 세수할

때 마다 세례의 의미를 되새긴다고 한다. 하나님이 물과 말씀으로 그를 거듭나게 하셨고 영생을 약속해주신 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것이다.

세례는 결코 무효가 되지 않는다. 중세 교회는 세례라는 배가 파손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배가 파손되면 고해성사가 널빤지 역할을 해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세례의 의미가 약화되었다. 그러나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굳건히 서 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아들을 두 팔 벌려 맞이했다. 마찬가지로 세상으로 나갔다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세례의 약속과 은총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루터는 세례의 능력을 굳게 믿었다. 루터는 종교개혁 과정에서 마귀의 공격을 받았다. 마귀가 “너 같은 죄인이 무슨 교회의 개혁자냐?”고

공격했다. 그 때 루터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면서 외쳤다. “그래, 나는 죄인이다. 그러나 나는 세례 받았다!” “나는 세례 받았다!”는

고백은 시련 중에서 외칠 수 있는 고백이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고백이다.

교회는 어린이들에게도 세례를 준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유아는 하나님께 드릴 게

하나도 없다. 오직 받을 뿐이다. 루터가 죽은 뒤 옷에서 작은 쪽지가 발견됐다. 짧은 글이 쓰여 있었다. “우리는 거지입니다, 이것은 참

입니다.” 루터가 마지막이 온 것을 직감하고 쓴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이 고백은 사람이 임종할 때에 가서야 타당하게 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첫 시작부터 타당한 말이다. “우리는 거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서 받아 삽니다” 하는 고백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세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회중은 이 사실을 되새기며 자신의 세례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한편, 아이를 세례대에

안고 나오는 부모는 아이를 기독교 신앙 안에서 성장하도록 기도하는 법과 말씀 읽는 법을 가르치는 약속을 한다. 세례를 베푸는 교회도

아이의 양육을 위해 힘쓰겠다는 각오를 한다.

III.

교회의 세 번째 표지는 “성찬”이다. 성찬도 성례전이다. 성례전이 될 수 있는 요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예수님의 제정, 약속의 말씀,

물질(물, 떡과 포도주). 세례는 일평생 한 번 받는 것이라면 성찬은 자주 받는 것이다. 성찬은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필요한 만나이다.

그러므로 성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 한다. 성찬에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다. 중세교회에서는 성찬이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제사라고 하였다. 십자가의 희생을 현재적으로 재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찬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게서

받는 선물이다. 우리는 감사를 바칠 뿐이다. 루터교 성찬 의식에 신학이 녹아 있다. 성찬 제정의 말씀 중에 이러한 말씀이 나온다. “우리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고전 11:23). 맨 앞의 말은 어떤 상황을 말하는가? 잡혀서 재판받고 죽을 상황이다.

그러므로 성찬은 죽음을 앞두고서 하는 유언이다. 유언은 유언자의 죽음이 있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유언자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무엇이 유산인가? 죄 사함이다. 유산을 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는다.

성찬은 복음이 주는 죄사함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딜리버리) 되는 예식이다. “배달 왔습니다! 택뱁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성찬에서 우리는 말씀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맛볼 수 있는 떡과 잔으로 받는다.

성찬에서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우리 각자를 지목하신다. 성찬 분배 시 참여자는 이 말을 듣는다. “이것은 ‘너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은 ‘너를 위해’ 주는 내 피다.” 예수님이 예배 집례자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자신의 피와 살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 입에까지

우리 혀에까지 배달되는 것이다.

“너를 위해”라는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또 있다. 우리는 성찬에 참석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베드로와 같지 않아, 나는 바울과

같이 거룩하지 않아, 나는 죄인이야.”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건강한 사람은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사람이 의원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죄인만 성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찬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성찬을 자주 거행하고 성찬에 열심히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는 죄의 용서를 자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찬은 참여자를 하나로 만들어 준다. 성찬식에서 보통 전병(煎餠)을 사용하지만 빵을 떼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전병은 낱개라는 느낌이

있지만 빵을 떼어 주는 것은 우리가 한 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물론 전병도 하나의 반죽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만 빵이 시각적으로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다) 잔도 낱개로 분잔(分盞)하지 않고 큰 잔에서 조금씩 돌려 마시기도 한다. 이것은 성찬이 개인플레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성찬에 “같이” 참여한다. 성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자매인 것을 확인한다. 성찬을 받을 때 우리는

옆에 서 있는 형제자매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성찬 후 기도문을 이렇다.

“기도하옵기는 이 [성찬의] 은사를 통해 우리를 더욱 강건케 하사 주님을 향한 믿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 가운데서 살게 하옵소서.”

성찬에서 우리는 세상을 이길 힘을 얻는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짓고 살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온 세상의 죄를 사해준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할 수 있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피 한 방울이 하늘과 땅보다 더 가치가 크다고 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몸과 피를 주시는 상황은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 유혹과 시련에 둘러싸인 상황이다. 시편 23편에서 주님이

원수 앞에서 내게 상을 베푸신다고 고백 한다. 원수를 제거한 상태에서 잔칫상을 베푸시는 게 아니다.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한 상 차려주신다.

세상의 시련과 마귀의 유혹이 둘러싸고 있지만, 마치 저들을 조롱하듯이 상을 차려주신다는 것이다. 성찬이 바로 그렇다. 시련과 고통 중에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내 몸과 피를 먹고 마시고 힘을 내어라”면서 자신의 몸을 주시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산다. “보는 것”은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찬에서 우리에게 천국을 잠깐 보여주신다.

성찬은 우리가 참여할 천국잔치의 예고편과 같다. 영화의 예고편은 본영화의 중요 장면들을 몇 커트만 보여준다. 몇 커트만 보지만 어떠할지

감을 조금 잡을 수 있다. 성찬 역시 천국잔치가 어떠할지 아주 잠깐이나마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은혜의 시간이다. 성찬에서 우리는 거룩한

몸으로 천국잔치에 참여할 소망을 가진다. 우리는 이 소망을 품고서 이 땅에서의 삶을 계속할 수 있다.

IV.

교회의 네 번째 표지는 “열쇠의 직무”이다(마 18:18-19). 우리는 열쇠로 문을 열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다. 천국문을 열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는 권세를 이 땅의 교회에게 주셨다는 말이다. 죄를 확정할 수 있는 권세와 사할 수 있는 권세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공공연히 죄를 지으면

교회는 당사자에게 죄에서 떠나라고 권면을 한다. 당사자가 거부하면 열쇠로 잠그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교회의 거룩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교회의 열쇠는 풀기도 한다. 여는 일이 잠그는 일보다 더 복음적이다. 예수님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신 분이었다.

루터교 예배 의식에는 공적인 “죄고백과 사죄선언” 순서가 있다. 앞부분에 나온다. 집례자가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이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 . .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죄사함의 약속을 이야기하면 회중이 고백을 한다.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하나이다. . . ”

이 고백에 대해 집례자는 사죄를 선언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외아들을 보내시사 . . . 하나님의

말씀의 종인 나는 여러분의 죄가 사하여졌음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예배에서의 공적인 사죄 선언은 회중 전체를 향한 선언이고 다수를 향한 선언이다. 그런데 서구의 일부 루터교회에는 사적인 “죄고백과

사죄”의 전통이 남아 있다. 개인이 자신의 양심을 억누르는 죄를 목사에게 고백하고 죄 사함을 선언 받는 의식이다. 루터는 이것의 가치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죄를 사하는 복음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료 목사에게 죄고백을 하고 사죄를

받았다. 루터 이후 이 전통이 사라졌는데 일부 루터교회에서는 아직도 이 전통이 살아있다.

교회가 죄사함의 위로를 제공하지 않으면 교인은 어딘가에 가서 위로를 받기 마련이다. 점쟁이에게 가는 경우는 드물지 모른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채 카운슬링이 일어나고 있다. 미장원 원장이나 택시 운전사가 카운슬러라는 것을 여러분은 인정할 것이다.

사람들은 미장원이나 택시 안에서 자신의 처지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인터넷,

카톡, 블로그, 페이스북에서 위로와 만족을 찾는다. 그러나 거기서 마음의 위로를 찾을 수 있는가. 사회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사람이

소셜미디어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기 자신은 더 불쌍하다고

느끼게 된다고 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말해 줄 기쁜 소식을 갖고 있다. “나는 평신도인데 내가 뭘”이라고 뺄 필요가 없다. 모든 신자는 복음의 전달자가

될 수 있다. 각자의 처지와 위치에서,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형제자매를 위로할 수 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진 형제자매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말에 귀기우려 줄 수 있다, 더듬거리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말해줄 수 있다. 하나님 약속을 말해줄 때 형제자매를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절망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 복음의 열쇠로 열면 절망의 문이 열리고 저주의 문이 열리고 사망의 문이 열린다. 복음의

열쇠로 열면 소망과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다.

V.

교회의 다섯 번째 표지는 “공적 직무”이다. 목사를 소명하여 안수를 주는 일이다. 앞의 표지들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곧 설교와 성례전

집행을 담당하기 위한 직분이다. 목사직 외에도 여러 직무가 있다. 장로, 권사, 집사, 아무 직분이 없는 사람을 부르기 어려워서 “성도님”

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모두 “성도”들이다. 이것을 두고 “만인사제직”이라고 부른다. 세례 받은 사람들은 모두 사제이다. 사제는 지배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위해 있다.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 사제로 부름을 받았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말씀한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 모두 복음 선포를 위한 제사장이

되었다.

VI.

교회의 여섯 번째 표지는 “예배”이다. 위에서 말한 표지들이 바로 예배에 등장한다. 예배에서 말씀의 선포가 있다, 세례식이 거행된다,

성찬식이 거행된다, 죄고백과 사죄가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가지고 섬기는 공적 직무가 있다. 이 표지들의 공통점은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들이다. 이 표지들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다. 이런 표현이 좀 뭐하지만, 예배에서 하나님은

“종합선물세트”를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는 보통 예배 “드린다”고 말을 한다. 예배를 하나님이 “받아주시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의 특징은 방향이 아래에서 위로 향한다는 것이다. 예배(예도 禮자 절 拜자)라는 단어 자체가 그런 의미를 품고 있다.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예배에서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섬기신다. 하나님이 각양 거룩한 선물들을 내려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린다.

루터는 기도와 찬양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말한다. 주기도를 암송하고 가르치는 것을 볼 때, 시편 찬송과 다른

영적인 찬송을 부르는 것을 볼 때, 또 사도신조와 십계명과 교리문답이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거기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 언급한 것들은 모두 교회의 거룩한 소유이다. 교회가 “독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도신조와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이것들을 통해 성령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백성을 성화시킨다. 기도도 교회의 소유이다. 시편은 기도의 일종인데 우리는 시편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VII.

마지막으로 교회의 일곱 번째 표지는 “십자가”이다. 교회 건물들 위에 커다란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를 보면 그 곳에 교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형틀이다. 교회는 이 십자가를 증거한다. 교회는 또한 십자가를 진 존재이다. 교회는 모든 종류의 불행과

핍박을 견뎌야 한다. 마귀와 세상과 육체로부터 오는 모든 종류의 시련과 악을 견뎌야 한다.

일본에서 사역한 루터교 선교사 중에 댕커(William J. Danker) 목사가 있다. 그는 “한국 교회는 등에 강철이 심겨져 있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와 육이오 전쟁의 불같은 시련을 견뎌낸 강인함을 두고 말한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외적으로는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다른

종류의 십자가가 있다. 세상의 도전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 때 교회는 세상의 가치에 자신을 맞추고 세상의 인정과 힘에 의지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의 전략이었다. “내게 엎드려 절하기만 해라. 내가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교회는 주님처럼 세상의 미움을 받게 돼 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요 15:18).

그런데 주님은 이런 말씀도 해주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교회의 능력도 십자가에서 나온다.

교회만 아니라 신자들 개인에게도 십자가가 있다. 우리는 육체의 질병과 연약함을 경험한다. 경제적인 궁핍을 경험하고 마음속에 슬픔,

두려움, 공포를 느낀다. 신앙 때문에 받는 핍박과 멸시가 있다. 특히 소명을 수행할 때 겪는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다. 우리 어깨에 놓인다. 우리는 소명을 수행할 때 십자가를 경험하게 돼 있다. 부모로서 자녀를 키울 때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다,

자녀는 자녀로서의 십자가가 있다, 배우자의 십자가가 있다, 직장인으로서의 십자가가 있고 은퇴자로서의 십자가가 있고 시민으로서의

십자가가 있다, 교인으로서의 십자가가 있고 목회자로서의 십자가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십자가를 선하게 사용하신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 나에 대해 절망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정욕과 옛 사람을 죽이다. 그리하여 새 사람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말은 앞서 세례에 대한 설명에서 말한 내용이다. 곧 세례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일어난다고 했고 세례의 의미는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고 했다. 그런데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일어나는 일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소명 안에서 발생한다. 소명은 우리가 성화되는 구체적인 장소라는 것이다. 소명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경험하고

이로써 부활하는 것이다. 루터는 우리가 십자가를 짐으로써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된다”고 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 머리이신

주님과 함께 부활에도 이르게 된다.

루터는 이렇게 교회의 일곱 가지 표지를 말했다 -- 하나님 말씀, 세례, 성찬, 열쇠의 직무, 공적 직무, 예배, 십자가.

한국의 개신 교회가 안팎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교회의 표지들에

충실한 것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개혁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저런 슬로건을 외치고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살리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끝]